교원이 아닌 ‘가르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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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13 11:13 조회17회 댓글0건본문
교원이 아닌 ‘가르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
- 남중섭
- 승인 2025.05.21 09:05
지난 2019년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 시행 이후 6년이 지나고 있다. 강사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강사제도’가 도입됐지만, 강사들은 시간강사 때보다 모든 상황이 더 악화했다고 말한다. 교육부와 국회 앞에서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농성을 벌여도 묵묵부답이다. 강사들이 말하는 현행 ‘강사제도’의 개선 과제를 일곱 차례에 걸쳐 듣는다.
많은 대학이 강사법 이후 기타교원 제도를
활용하며 강사를 줄이고 있다.
대학은 강사보다 처우가 더 열악한
기타교원을 양산하고 있다.
대학은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이와 관련된 행정, 사무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학생과 ‘가르치는 사람’, ‘행정, 사무를 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학생과 교원 및 직원으로 구성된다. 교원의 교육활동은 법으로 보호하고 보수 또한 우대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교원의 교육·지도, 학문연구는 국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 중에는 교원이 아닌 사람이 있다.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법률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원이 아닌 사람들의 가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명백히 헌법 11조에 명시한 평등권의 위배이고 차별행위이다.
고등교육을 보호하고 교육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틀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교육법이 이러한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고등교육법은 고등교육에 종사하는 교직원을 규정함과 동시에 교원 외 겸·초빙 ‘등’에게 교육이나 연구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육, 연구를 담당하지만 그들을 교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교육이나 연구를 담당하는 사람이 곧 교원인데, 이들을 왜 교원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들의 교육활동이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 보호받고 보수 또한 우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학문과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대학이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고, 그들을 착취하기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은 1/5의 비용으로 전임교원 대신 겸·초빙 등을 활용하며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강사는 줄고 기타교원은 증가세
전임교원은 점점 감소하고, 낮은 임금과 고용도 불안정한 비전임교원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교육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임교원은 38.5%에서 36.5%로 감소했고, 강사 및 겸·초빙 ‘등’의 비전임교원은 61.5%에서 63.2%로 증가하였다. 비전임교원의 증가 추세 속에 강사는 47.4%에서 41.7%로 감소하였지만, ‘등’에 속하는 기타교원은 30.2%에서 34.7%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비전임교원 중 강사는 줄고 기타교원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바로 대학이 제도를 악용하며 비전임교원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증거이다. 강사법 이후 시간강사는 강사라는 명칭으로, 공채를 통한 임용 및 3년간 재임용 기회 보장, 방학 중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을 법으로 보장받았다. 대학의 입장에서 시간강사가 강사로 된다는 것은 비용이 조금 더 들어가는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임교원의 임금과는 여전히 비교할 수준이 못 되지만, 많은 대학이 강사법 이후 기타교원 제도를 활용하며 강사를 줄이고 있다.
기타교원의 처우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은 이를 악용하려 한다. 대학은 강사보다 처우가 더 열악한 기타교원을 양산하고 있다. 전국 대학에는 30여개가 넘는 다양한 명칭의 기타교원이 있다. 또한 강사로 채용했다가 기타교원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학은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비전임교원을 더욱 세분화하여 더 나쁜 형태의 위계를 생산하고 있다.
대학의 비용 절감은 교육의 몰락으로
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꽤 유명한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의 2009년 작품,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겨우 2천 달러 정도의 연봉으로 생계를 걱정하는 지역 항공사의 조종사들 이야기이다. 그들은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고, 혈장을 팔기도 한다. 그들의 박봉은 대규모 항공사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근거리 노선은 하청 업체에 떠넘기고, 단가를 낮추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단가를 점점 줄이다보면 결국 안전을 위한 비용까지 줄어드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사고를 유발하게 된다.
조종사가 안전하게 승객을 모시기 위해서 항공사는 조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3천 미터 높이로 운행하고 있는 항공기의 조종사가 오늘 끼니는 어떻게 해결할까, 이번 달 대출이자는 어떻게 갚을까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면 그 승객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영화 같은 일들이 대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학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승객을 모셔놓고 비용 절감을 위해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착취한다. 대학은 양질의 고등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며, 교육보다는 수익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비용 절감이 항공기의 안전마저 절감하듯, 대학의 비용 절감은 교육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양질의 고등교육을 위해서는 ‘교육하는 사람’이 교육,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책임은 대학, 정부, 국가에 있다.

남중섭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대구대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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